인간의 기억 처리와 놀라운 저장능력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가장 기막힌 능력 중 하나는 바로 기억력입니다.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침팬지의 단기 기억력은 20초에 불구하다고 하죠. 

 

Nexflix 다큐멘터리 "뇌를 해설하다"의 에피소드 #1. Memory, Explained(인간의 기억)편을 보다보면 10분 만에 500개의 숫자를 순서대로 다 외워버리는 Memory 월드 마스터 "얀자"(Yanjaa Wintersoul)라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대체 어떻게 이 많은 숫자를 기억하는 것까요? 

 

 

인간이 기억을 저장할 때 가장 중요한 부위로 꼽히는 뇌의 부위는 중앙 측두엽, 특히 해마(Hippocampus)가 핵심입니다. 1953년 헨리 몰레이슨이라는 미국 남성은 (당시 27세) 간질 발작의 확장을 막기 위해 이 해마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습니다. 안탁깝게도 그는 수술 이후 기억상실증에 걸려 30초 이상 일상의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지만, 인간의 뇌에서 해마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밝히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 (무의식적으로 몸에 익힌 자전거 타기, 1929년 주식 붕괴 등 계량적(Symentic) 사건 등은 기억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기억저장소, 중앙 후두엽

 

특히 인간의 기억력은 어떠한 특징이 있는 상황에서 향상됩니다.  그리고 ①감정, ②장소, ③이야기, 이 3가지 요소가 기억력을 높이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뇌는 이 3가지 요소가 있을 때 강력하게 반응합니다. 우선 감정적인 기억이 저장될 때 해마 옆에 붙여 있는 편도체(Amygdala)는 그 기억을 더 자세하게 형성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해마 내에는 특별히 "장소에 반응하는 세포"(Place Cells)가 있어서 자신이 어떤 장소에 속해 있었는지 기억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줄거리가 있는 정보에 대해 뇌 세포가 더 많이 집중하며,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는 정보를 더 잘 형성해 냅니다. 

 

기억력 세계 챔피언인 얀자가 그 많은 정보를 기억해 내는 비결은 바로 이 세 가지, Story, Place, Emotion을 최대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숫자를 외울 때, 우선 숫자를 자신만의 부호로 변환합니다. (539 → Sag/ 166 TBB) 이후에 각각의 워딩을 연결시켜 자신만의 이야기로 엮어 냅니다. 예컨데 TBB에서 중동 음식 타불레(Tabbouleh)를 연상한 다음, 축 처진 한 남자(Saggy person)가 그것으로 뒤 덮이는 스토리를 만듭니다.

일부러 뇌를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있는 Disgusting한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죠. 이후에 그녀는 "기억의 궁전"이라는 고대의 기억술을 사용하여 장소(Place)의 힘을 빌립니다. 자신이 지리를 잘 아는 한 동네를 미로처럼 설정한 뒤, 자신이 만든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골목마다 배치하고, 길을 따라가며 마치 여행 기록을 남기듯이 숫자를 재 해석합니다. 

결국 얀타같은 기억력 마스터도 단지 IQ가 높아서가 아니라 훈련을 통해 이런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즉 누구나 Story, Place, Emotion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훨씬 더 자신의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변질되는 오류 투성이 기억

그러나 때때로 인간의 기억은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뇌에서 기억을 형성시킨 요소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억을 왜곡시키는데 앞장서기 때문입니다. 특히 감정적 기억의 경우 중요한 핵심 내용을 확대하고, 나머지 부차적인 부분은 희석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억의 모든 세부사항까지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우리의 뇌는 기억의 빈 구멍 안에 기존에 가지고 있는 다른 기억 혹은 사실들을 채우는 작업을 합니다. 즉, 기억을 재조립하는 것 입니다.

 

이 과정에서 심대한 Side effect가 발생 할 수 도 있습니다. 다큐에는 성폭행당한 한 여성이 형사들의 유도 심문으로 인해 엉뚱한 용의자를 범인으로 지목한 사례도 등장합니다. 

Jennifer Thompson은 성폭행범으로 엉뚱한 사진을 지목하게 되고, Ronald Cotton이란 사람은 진범이 잡힐 때까지 3년간 교도소에 갇히게 됩니다.  

미국의 심리학 연구원들은 14세 청소년 집단을 면접조사하고, 10년 뒤에 다시 그들에게 자신들의 10대시절이 어떠했냐고 조사를 했는데(부모님과의 관계, 좋아하는 활동, 가치관 등), 그들의 기억은 형편 없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 저는 줄리안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가 떠올랐습니다. (영미권에서 최고 권위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토니는 청년시절, 옛 애인 베로니카와 자신의 절친 애드리언이 교제를 시작한다고 하자 그들을 축복하는 관대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노인이 된 토니는 애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게 보낸 편지를 다시 읽게 되었을 때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내용과 완전히 다른 저주의 문장들이 적혀있었던 것입니다. ("너희 둘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가 문제가 생겨서 평생 짐이 되었으면 좋겠다!" 등등) 

그리고 토니는 자살한 애드리언과 베로니카 사이에 장애인 아들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됩니다. 진짜 결말이 드러나기 전까지는요. 이 소설의 마지막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지금껏 읽은 소설 중 가장 Striking 했고, 여전히 이 작품을 인생 소설 중 하나로 꼽는 이유입니다. 스포로 인해 더 자세한 설명은 자제합니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는 기제로 기억마저 작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으며, 자신의 시념대로 변형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영화로도 개봉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기억, 그럼에도 삶을 지탱하는 근간인 이유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기억력이 이렇게 오류가 많고,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라면 대체 왜 인간에게 디자인 되었을까?" 다큐에서는 뇌 연구결과를 통해서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실험자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미래의 경험을 상상하도록  한 뒤에, 그들의 뇌를 Scan했는데 그 결과 놀랍게도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가 거의 일치했습니다. 인간은 다가오는 미래의 어려움과 장애물에 대해서 과거 경험을 통해서 해결해 나가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인간이 과거를 기억할 때나 미래를 상상 때 거의 같은 뇌의 연결망을 이용한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 부분은 시크릿과 같은 류의 책에서 말하는 Affirmation 효과가 단순히 최면이 아니라 뇌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상상을 하든 과거를 회상하든 우리의 뇌가 유사하게 Working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뇌 세포 자체는 상상과 과거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결국 인간이 상상하는대로 믿어버린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 일 수 있습니다.  

 

뇌 과학자 조지프 르두는 "뇌의 시냅스에 어떠한 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하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시냅스가 형성되고, 이를 통해서 사람의 인격과 운명이 바꾼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든 기억들을 쌓아 신념을 만들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 많은 정보들을 기억하고 해석해서 미래를 더듬어 갑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변성을 지니고 있으나, 여전히 우리 인간의 삶이 지속될 수 있는 중요한 엔진입니다.  

 

우리가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기에, 어두운 기억에 매몰된다면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건설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과거의 우리의 경험마저도 재해석하여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인간의 미래와 과거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우리는 기억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 그리고 미래를 완성해 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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